블로그에서도 종종 소개해 드렸던 G마켓 해외봉사단이 벌써 12번째 맴버들을 모집합니다.
더욱 업그레이드 된! G마켓 해외 봉사단 12기 모집 그 내용을 소개해 드립니다.
G마켓 해외봉사단 12기 모집 내용 봉사단명 : 코피온과 함께하는 G마켓 해외봉사단 12기 선발인원 : 총 100명 (국가별 20명) 파견기간 : 2010년 4월 중, 11일 ~ 14일 (국가별로 상이함) 파견국가 : 필리핀, 캄보디아, 네팔, 인도, 중국곤명 국가별 파견일정 자세히 보기 클릭@ 참가대상 : 만 20세 ~ 30세의 신체 건강한 대학생 및 일반인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로서 해외여행에 결격 사유가 없는자
모든 해외봉사단원들에게 봉사활동 확인서가 발급 되며, 우수 참가자에게는 별도의 인센티브가 시상식도 진행된다고 하네요.
↓↓↓↓↓↓ 12기 모집 진행 일정입니다 ↓↓↓↓↓↓
서류접수 : 2010년 1월 25일 (월) ~ 2월 11일 (목) 18:00
서류 합격자 발표 : 2010년 2월 26일 (금) 18:00 G마켓 홈페이지
면접전형 : 2010년 3월 3일 ~ 3월 4일 10:00~17:00 팀별 면접
면접 합격자 발표 : 2010년 3월 11일 (목) 10:00 G마켓 홈페이지
합숙교육 : 2010년 3월 20일 (토) ~ 3월 22일 (월) 2박 3일
최종합격자발표 : 2010년 3월 23일 (화)
파견기간 : 2010년 4월 중
해단식 : 2010년 5월 21일 (금) 예정
지금 G마켓 해외봉사단 관련 페이지로 가시면 그동안의 해외봉사단 히스토리와 활동보고서를 살펴보세요~ 많은 분들이 해외 봉사단에 대해 궁금해 하셨던 점을 올려 놓은 F&Q 코너도 준비되어 있답니다.
안녕하세요!
인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안주영 입니다. 벌써 세번째 후기네요. 최근 봉사활동을 하면서 가난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해드릴까해요.
[Jiten의 집찾기]
Jiten집은 Bihar 주에 있으며 West Bengal에서는 기차로 약 10시간 정도가 걸리는 거리라고 합니다. 정확한 집 주소를 알기 전까지는 감히 가볼 엄두도 내기 힘든 거리였는데요. 하지만 마침 운이 좋게도 SHIS에는 West Bengal 경찰의 고위 인사가 한 명 머물고 있었고, 우리와 안면도 있는 사이라 그에게 요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Bihar의 경찰과 협조하여 그의 집을 찾아주기로 했고, 아직까진 Jiten의 집을 찾는데 시간이 걸리고 있지만 머지 않아 분명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거라 확신했습니다.
Jiten
하지만 단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의 가족이 Jiten를 반겨주길 기대하고 있지만, 사실상 그건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라는 것이에요. Bihar는 인도 내에서도 가장 가난한 주의 하나로 꼽히고, Jiten의 가족도 또한 빈곤에 허덕이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죠. 그런 그들에게 일도 하지 못하는 Jiten는 짐만 될 수도 있고, 어쩌면 Jiten가 처음부터 버려진 것일 수도 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습니다.지금까지는 누구도 확답을 주지 못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J 스스로가 너무도 집에 가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만약 우리 힘으로 가능하다면 들어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SHIS APD의 새손님, AKASH(하늘)]
외부의 한 Social Club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약 2개월 전 길거리에서 찾은 한 명의 정신질환자를 SHIS로 이송시키고 싶다는 연락이었습니다. SHIS의 Director는 흔쾌히 승낙했고, 그들은 기껏해야 20살이나 되었을 법한 조그만 아이를 한 명 데리고 왔어요. 얼마나 오랫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던지, 그 아이는 마를 대로 마른데다 잠시도 서 있질 못하고 주저앉아 버리곤 했습니다.
아이를 데려다주신 분들로부터 어디서, 언제, 어떻게 찾게 되었는지, 아이의 특징은 무엇인지 간단하게 묻고는 먼저 아이에게 목욕부터 시켜주었습니다. 화장실을 사용할 줄 모른다는 그 아이는 역시나 심한 악취를 풍겼고, 처음 목욕을 갓 끝마치고는 바지에 오줌을 지리는 바람에 다시 씻겨줘야 했어요. 다시 목욕을 마치곤 밖으로 나가 햇빛을 좀 쐬게 했는데, 이 아이도 J와 Sunil처럼 목욕 후 기분이 좋아졌는지 살며시 미소를 그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 아이의 상태는 지금까지 있던 두 명의 정신질환자보다도 조금 더 심각했는데, 발견된 곳으로 보아 이곳의 현지어(방글라)를 쓸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어느 사람의 말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지난 2개월 간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가만히 화단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아이에게 우린 Akash(하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우리의 새손님은 하늘을 닮아있었다.
[가난이란 무엇인가]
가난이란 무엇일까요. 얼마 전, Copion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TvN에서 진행하는 World special Love라는 프로그램과 함께하는 일련의 프로젝트로 SHIS의 도움을 받고 있는 가난한 가족, 그 가족의 아이에 대한 정보를 조사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별 것 아니라는 듯이 흔쾌히 ‘네!’하고 대답했건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언제나처럼 나는 Mukul(이하 M)을 찾아갔고, 나는 그에게서 가장 가난한, 가장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넌지시 물었습니다.
내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M은 ‘가난이 무엇인데, 가난이 뭔지 말해봐'라고 대답했습니다.
조금은 답답했지만 단 몇 초 후에 그가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가난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할 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이에요. 대충 둘러댈 수도 있었지만, 왠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매일 바로 내 눈앞에 수십, 수백 명의 가난한 사람을 접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실제 삶이 어떤 지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
빈곤한 대부분의 가정의 하루 일당은 50~60Rs라고 합니다(노동원인 일용·건설직 노동자의 경우) SHIS 직원들이 받는 보통 일당이 30~50Rs인 것을 감안할 때 일당은 적은 편이 아니지만 일용직 노동의 특성상 한 달에 20일을 일할 수 있으면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곧 다가올 우기엔 어떨까요? 한 달에 15일, 10일, 심지어는 일주일 정도도 일을 못할 수도 있다고 하네요.
이런 상황에선 아내도 일거리를 구해야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아요. 집에서 할 수 있는 슬리퍼 만들기(우리나라에서 ‘조리’라고 불리는 슬리퍼의 고무 부분을 가위로 잘라내는 작업이다.)의 경우 자신의 몸집만한 주머니에 가득 채우면 겨우 30Rs를 받을 수 있다고 해요. 인도 전통의상인 사리 만들기도 있는데 사리는 보통 시장에서 최저 150Rs~200Rs선부터 시작하지만, 며칠을 걸려 사리를 하나 만들었다 쳐도 중개상에게 팔 때는 기껏해야 40~50Rs를 받을 수 있어요. 이런 가정에서 어떻게 아이를 학교에 보낼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여자아이의 경우는 더욱 심각한데요. 여자 아이는 현지 정서상 밖에 나가서 일을 하지 못해요.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아이, 동네 음식점에서 주인에게 손찌검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일을 하는 남자 아이들은 여자 아이들에 비해서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에요.
빈민촌의 많은 아이들은 빈곤을 이기지 못해 조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어요. 14~15살에 결혼을 해서 본인의 성장이 채 끝나기도 전인 16살이면 그 작은 뱃속에 다른 존재를 키워야 하는 아이. 그리곤 그 아이로 말미암을 또 다른 빈곤의 시작. 끊길 줄 모르는 조혼의 굴레는 바로 극도의 빈곤으로부터 시작되는것이었어요. 조혼을 부추기는 또 하나의 이유. 지참금인데요. 결혼 이후 남편이 벌어다 줄 돈에 대한 보상의 의미로 주어진다는 지참금은 여자 아이가 커갈 수록 금액도 함께 늘어나게 돼요. 이 지역에서 단 1%의 여성만이 지참금에서 예외가 될 수 있다는 M의 말에 비춰볼 때, 대다수의 가정에서 조혼은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닌 것 같아요.
M으로부터 들은 이곳의 가난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던 나를 너무도 부끄럽게 만들었어요. 날 보는 그의 시선도 ‘그 정도도 모르고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고 하는 거냐’라고 말하는 듯이 느껴지네요..
가난이란 무엇인가. 지금도 어딘 가엔 내가 보고 들은 것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실오라기 하나 없이 노출된 이들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인도에서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안주영! 저의 두번째 인도 봉사활동 이야기 입니다. 제가 SHIS APD(Ant-Psychopathic Department)에서 정신질환자 분들을 도우면서 생긴 뚜렷한 목표! 다들 기억하고 계시죠?
나에게도 목표가 생겼다
내가 돌아가기 전까지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목표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제 봉사활동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Shahid와 Mamta와의 만남, 변화가 시작되다]
Shahid(이하 S)와 Mamta(이하 M)을 처음 만나던 날, 나는 그 당시 할일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중이었다. 보통 SHIS에 오는 봉사자들이 하는 교육 봉사활동은 학교들이 모두 학기말 고사를 치르고 있거나 방학인 관계로 진행할 수 없었고, 기껏해야 할 수 있는 거라곤 시험 감독을 들어가는 일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너무 한심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기관장님으로부터 정신질환자를 돌보는 일도 할 수 있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주저주저 할 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출발할 때의 각오와는 달리 편했던 일상에 안주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등장으로 내 계획은 180도 변했다. 처음 그들이 도착한 날 밤에 나눈 짧은 대화로부터 변화는 시작되었다.
“Mamta, Aren't you afraid of them? I think they can be aggressive.” “No”
그 단호한 ‘No’를 듣는 순간 그런 질문을 한 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사실 나는 주저하고 있었다. 시험감독이 지루하고 쓸모없다고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힘들고 더러운 일을 하고 싶지는 않은 이기적인 마음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내 안에 조금씩 더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나와 동갑내기 친구 Mamta
[지각 능력을 되살리기 위한 여러가지 활동] 우리는 지각능력을 되살려 줄 만한 활동들을 찾아야 했는데, Shaid의 아이디어는 크리켓과 축구였다. 특히나 Sunil은 지각능력도 떨어질뿐더러 몸 상태도 굉장히 안 좋아서 바닥에 떨어뜨린 빵을 주우려다 넘어지곤 하기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활동이 필수적이었다. 다행히도 Sunil은 공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을 보였다. 던져준 공을 제대로 받지는 못했지만 다시금 우리에게 던져주기도 하고 공이 멀리로 굴러가면 따라가서 주워오기도 했다.
순진한 눈빛의 Sunil
하지만 문제는 Jiten, 그는 공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 때, Silpi라는 이름답게(방글라로 Artist라는 의미) 인경이가 스케치북과 물감, 붓 등 그림재료를 가져왔는데, Jiten은 험악한 인상과는 달리 미술에 아주 관심을 보였다. 정말 다행이었다.
[약물치료후, Jiten이 치유되기 시작하다]
매달 첫번째 일요일마다 몇명의 정신과 의사가 Jiten과 Sunil을 보기 위해 방문했다. 그들은 10분여의 짧은 관찰, 30여분의 대화 끝에 우리에게 한 종류의 약을 한달치 주고는 돌아갔다. 분명 Jiten과 Sunil이 보인 증상은 다소 달랐지만,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두명 모두 그 약으로 하여금 정신분열 증세를 줄이고 안정시킬 수 있다고 했다.
Jiten과 Sunil
약을 투여한 이후로 Jiten은 빠르게 치유되기 시작했다. 어느새 1차적인 생존을 위한 욕구(단순히 배 채우기) 말고도 여러가지 욕구를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느 군것질 거리의 이름을 정확히 짚어 요구하기도 하고, 샤워를 하고 싶다고 말하거나, 집에 가고 싶다는 말도 예전보다 훨씬 많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놀라운 것은 심지어 그가 자신의 집 주소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Jiten
집으로 가고 싶다는 말에 집이 어디냐고 묻자 정확치 않은 발음으로 더듬더듬 말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글로 쓸 수 있을지 모른다 싶어 가져다 준 종이에 힌디로 자신의 집 주소(State, District, Village 이름)와 부모, 형제들의 이름을 써 주었다. 아버지가 한 학교의 선생님이라고까지 말한 J는, 안타깝게도 전화번호나 근처 경찰서 이름 등의 더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떠올리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으나, 이 정도만 해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Shahid와 Mamta와 이별]
Shahid와 Mamta 그리고 나는 한달여 간의 짧은 시간동안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했다. 특히 Shahid와 나는 눈 뜨자마자 가장 먼저 만나서 눈 감기 전에 가장 마지막으로 만나는 친구였다.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농담부터 여러가지 서로에게 배울만한 이야기를 나눴고, 그는 더이상 내게 외국인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까워질 수 있었다. 아무도 우리의 일을 선뜻 도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도 우린 더 서로에게 의지했던 거 같다.
Shahid와 Sunil
그리고 인지하지도 못하던 찰나, 그들이 갈 시간이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어떤 지식도 없고 힌디도 모르는 내가 어떻게 지금처럼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가지 말라고 투정 한 번 부려보는 것과, 다시 정신 차리고는 앞으로 일하는 데 필요할 것들을 물어보는 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필수적이었던 것은 바로 힌디였다. 나는 이런 저런 필수 문장들을 발음대로 한글로 받아 적어 놓았다.
그 중의 으뜸은 바로 “에세이 꺼로(이렇게 해)” 이 문장이야 말로 사용 빈도나 중요도, 환자들의 반응도에 있어서 마법과도 같은 말이었다.
Shahid와 Mamta가 떠나고 시간이 흘렀다. 아직도 그들이 머물던 방을 지날 때면 장난삼아 노크를 해보기도 하고, 그들에게 문자나 전화도 심심찮게 하곤 한다. 한 달 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첫 만남부터 날 바꾸어 놓았고, 앞으로도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지치지 않을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Good Bye!
대학생 시절이 끝나고 잠시 휴식기를 가지게 된 저는, 좀 뜻깊은 무언가를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친구 집에서 발견하게 된 인도 여행기 서적
그때 저와 친구는 '이거다!'라고 환호성을 지르며 인도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지요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소개할 도시는, 바로 인도의 '바라나시(Varadasi)' 입니다
인도여행을 떠나본 사람이라면 꼭 한번 들려보는 바라나시, 이곳을 사람들은 흔히 '영원한 도시'라고 말합니다. 2000년이 넘는 기간동안 인도 종교의 중심지로서 성스러운 성지순례 장소이기도 합니다
바라나시 Varanasi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 주 남동부에 있는 도시로 인구는 약 93만여명이다. 힌두교도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7개 도시 중 하나로, 갠지스 강의 왼쪽 둔덕에 자리 잡고 있다. 옛날부터 사람들이 거주해온 세계에서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갠지스강 중류에 아리아인들이 처음 정착한 것이 시작이 되었다. BC 2000년경 아리아인들의 종교와 철학의 중심지이자 상업및 산업의 중심지였다.
바라나시 여행에서의 잊혀지지 않는 추억들을 중심으로 "바라나시에서 꼭 해봐야할 5가지"를 선정해 보았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여러분의 인도여행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지금부터 한번 떠나볼까요!
1. 푸자의식
갠지스 강에서 벌어지는 푸자의식은 밤마다 가트 주변을 따라 펼쳐집니다.
'푸자'란 예배를 뜻하는 말로 브라만 사제들이 매일 저녁 주관하는 힌두교 예배를 뜻합니다.
메인 가트의 가장 큰 의식
7명의 브라만 사제들이 강가를 향해 차려진 각각 7개의 제단 앞에서 뭔가 신비로운 의식을 집행하지요. 그러면 그것에 맞춰 반주자가 어떤 노래를 반주하며 부릅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많은 힌두교 인들은 그 노래를 따라부르고 박수를 치면서 열정적으로 의식에 참여하는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제들이 의식드리는 모습
에배가 끝나고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을 담은 꽃을 강물에 띄웠고, 브라만이 나눠주는 별사탕을 받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사탕도 먹고, 꽃 띄우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의식 자체에서 큰 감흥을 받는다기 보다는, 그것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리듬에 맞춰 어떤 단어만 목터져라 외쳤는데 알고보니 그 단어의 뜻이 '해탈, 자유'를 뜻한다고 하더군요.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봤는데 그런 제 눈빛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들은 진심을 다해 의식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바라나시의 베스트 장면었죠!
2. 갠지스 강, 축복을 비는 곳
'축복'은 말만들어도 행복하지요. 그런데 바라나시에서는 어디서나 축복을 주고 받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바라나시가 가진 신비한 전설 때문인데요, 그 전설은 바로 '여기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사람은 어떤 종교를 믿었던 얼마나 큰 죄를 지었던가에 상관없이 천국으로 바로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많은 종교인들은 이곳을 자신의 죽음을 맞이할 곳이라 생각하고는 발걸음을 찾기도 합니다.
특히 갠지스 강은, 인도인들에게 '홀리 워터'라고 불립니다. 그래서 매일 같이 이곳에 모여 목욕하고 빨래하고 심지어 물을 마시기도 합니다.
축복을 비는 행위는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인도인들은 이곳에서 꽃을 사고, 마사지를 받고, 면도도 하고, 거지에게 동냥을 주는 것으로 자신의 축복을 더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라나시에 가신다면 꼭 강층계도 들리시고 거리 곳곳에서 여러분의 축복을 더하시길!
면도하시는 할아버지
3. 짜이, 그 달콤한 맛의 매력
인도의 차(茶)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짜이'입니다. 짜이찻집이 생길 정도로 한국에서도 그 인기가 더해간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인도에서 마시는 짜이의 맛은 정말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인도의 묘한 풍경과 어우러진 그 달콤함에 그냥 푹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죠!
짜이 끓이시던 할아버지
짜이는 바라나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갠지스강을 바라보며 마시는 짜이가 가장 맛있었던거 같아요. 갠지스강이 가지는 묘한 매력과 어우러져 참 많은 생각을 안겨주기도 하였지요. 여러분도 바라나시에 가신다면, 갠지스강을 바라보며 짜이를 드셔보세요! 그 어떤 비싼차도 주지 못할 감흥에 빠지실수 있을거에요:)
4. 기도, 신을 향한 간절한 이야기
바라나시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풍경은 바로 길거리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매년 100만 명이 넘는 힌두교 순례자들이 방문하는 도시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신들의 나라 인도에서는 골목 여기저기 아니 가로수 밑에라도 신상이 있으면 그곳이 바로 사원이 되는 문화적인 이유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신을 향한 기도가 생활 속 깊숙이 박혀 있는 종교의 도시인 것이지요.
골목 입구 작은 사원앞에서 기도하는 할아버지
특히 기도가 생활에 깊숙이 박혀있어서 인지 거리 곳곳에서도 자신의 소원을 비는 다양한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계단 곳곳에는 그릇들이 놓여져 있었는데요. 어느 여행자의 말에 의하면 이 그릇에는 인도인들의 소원이 담겨있다고 하더군요. 소원을 담은 그릇이라... 말만 들어도 참 멋지지 않으세요? 인도에 가시면 여러분의 소원도 신에게 한번 이야기해보세요. 신비로운 나라 인도에서라면 왠지 신을 만날 수 있을거라는 믿음이 들테니까요:)
5. 화장터, 삶과 죽음이 가장 가까이 있는 곳
갠지스 강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화장터'일 것입니다. 바라나시 관광에 있어 필수 코스이기도 하죠. 인도인들은 인도 어디에서 살든지 간에 이곳에서 죽어 화장돼 재가 되어 갠지스강에 뿌려지길 갈망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흔히 이곳을 '영혼의 도시'라고 부르죠. 산자와 죽은자가 가장 가까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250구 정도의 시체가 태워진다는 이곳은 언제나 흰 연기가 빼욱합니다. 절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개인적으로 소장한 사진은 없지만 가장 잊혀지지 않는 풍경이기도 했죠. 화장되다 남은 시체가 갠지스강에 흘러가는 것이 보이기도 하고, 저는 너무 놀라 화장터를 멍하게 쳐다보는데 인도인들에게는 일상의 풍경처럼 스쳐지나간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습니다. 시체의 재가 뿌려진 갠지스강을 배를 타고 건널때면 참 많은 감흥이 밀려오더군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음' 앞에 일어나는 여러 생각의 고리를 잡기 위해 인도에 찾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라나시에 가신다면 꼭 화장터를 찾아보세요. 새로운 각도에서 삶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인도에서 잊혀지지 않은 풍경 하나,
바로 한글쓰는 할아버지 입니다. 한글을 어찌나 예쁘게 쓰시던지 기분이 좋아지더라구요!
그러나 한국어는 한마디도 못하신다는^^;; 인도에 가시면 꼭 한번 들려보시길!
이번 이야기는 인도에서 열심히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안주영씨의 소식입니다.SHIS APD(Anti-Psychopathic Department)에서 정신질환자 분들을 도우며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분들을 도우면서 봉사활동의 뚜렸한 목표도 생겼다고 하는데요. 자세한 내용을 안주영씨의 후기로 만나볼까요?
[4년전 단기 해외봉사 단원으로 첫 인도 방문!]
때는 어언 4년 전 2005년 겨울, 나는 코피온 단기 해외봉사 단원으로서 인도를 방문한다. 10여 명의 팀원과 함께했던 10일 간의 시간. 그 당시 나에게 그것은 봉사활동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즐겁고 흥미로울 따름이었다. 학교 벽면에 동화 같은 벽화를 그려 주었던 일이나, 아이들과 함께 했던 레크리에이션 시간. 애초에 아이들을 위한 일이었기 때문에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고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하지만, 가끔씩 오히려 내가 더 즐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겨우 10일이었지만 현지어로 간단한 인사말은 할 수 있을 정도로 배울 수 있었고, 언젠가 꼭 다시 오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게다가 내가 한 일은 분명히 봉사활동인데, 남을 돕는 일이었는데 오히려 내가 더 즐거워했던 사실에 혹시나 내가 봉사에 뜻을 가진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감히 해보곤 했다. 그렇게 그 10일을 내 머릿속에 ‘행복하기만 했던’ 시간으로 새긴 채, 4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4년만에 다시 찾은 인도, 내이름은 SHAGOR !]
4년 전 만들었던 인연들, 그리고 그 때의 짧았지만 생생했던 기억들이 날 이끌어 다시 이곳에 왔다.
Shagor. 그 당시 기관장님이 지어주셨던 이름이다. SHIS에 온 단원들은 대체로 기관장님으로부터 인도 이름을 받는데, 그 수가 수백 명에 이르다보니 아무래도 랜덤으로, 혹은 큰 생각 없이 지어준 이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내 새 이름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Shagor, 혹은 Shagar. 뜻은 The Ocean.
이름에 관한 깊은 속사정은 모르지만 난 그들이 날 ‘무한한 포용력을 가진 大洋’같은 사람이라고 판단한 것이리라 믿었다. 아니면 설령 그게 무작위로 정해진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난 이곳에서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그 이름은 내가 다시 이곳에 돌아올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콜카타 도착 20분 전. 이번엔 누가 마중나올까? 모르는 사람이 나올까?
만약 아는 사람이 나오면 날 기억할까? 날 기억한다면 다시 돌아온 Shagor을 반가워 해줄까?
마중을 나온 건, 기관장님 둘째 아들 ‘불불’이었다. 내 가방을 받아주다 눈이 마주친 그의 첫 마디.
“You came here before, right?” “Yes!!!!!!!!!!!!!!!!!!!!!!!!!!!!!!!”
너무 반가웠다. 사실 그는 반갑다기보다 놀랍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웠다. 그 뿐만 아니라 날 기억해준 사람은 생각보다 많았다. 내게 이름을 지어준 기관장님은 물론이고, (사실 떠나기 전 한국에서 기관장님께 전화했을 때, "Hello, I'm Shagor!"이라고 인사를 했었는데, 기관장님은 그 때가 더 인상깊었다고 하셨다.) 요리를 해주시는 루시아 디디(디디는 손윗 여성을 가리킨다.), 기관장님의 두 딸 내외, 그 땐 어리기만 했던 묵띠 등등.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오히려 이분들이 날 반가이 맞아준 정도의 반만큼이라도 내가 이분들을 돕고 갈 수 있을까 걱정했다.
[SHIS APD(Anti-Psychopathic Department) 로서의 새 출발]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우리가 오기 몇 달 전, SHIS엔 거리의 정신이상자를 데려다 치료하는 시설이 신설되었다고 한다. 현재 4~5명의 환자가 있지만 지금은 담당자가 그만두는 바람에 그들을 돌볼 사람이 없고, 조만간 오리샤 주에서 두 명의 자원봉사자가 더 올 예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난 그들을 도와 그 시설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기회였다.
오리샤에서 온 두 명의 자원봉사자, ‘샤히드’와 ‘맘따’. 그 둘은 이 분야에 있어 전문가였다. 우린 먼저 정신이상자 수용소 바로 옆에 우리의 사무실을 차렸다. 거의 창고로 이용되고 있던 곳인데, 쓰레기를 다 내다 버리고 물청소도 했다. 그리곤 진단을 위한 테이블과 환자용 의자까지 들여놓자 정말 쓸 만한 사무실이 되었다. 우린 그 사무실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처음으로 본 환자들의 몸. 그들은 갖가지 사고로 인해 정신질환을 갖게 되었고, SHIS에 오던 날도 사고를 당해 큰 상처와 함께 길거리에 버려져 있던 걸 데리고 온 것이라고 했었다. 그 전까지 아무도 그들을 돌보지 않던 터라 우리가 수술용 장갑과 마스크를 써야 할 만큼 더러운 상태였다. 도대체 그들은 몇 개월 만에 뽀득뽀득한 피부를 가져보는 것일까. 그들도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샤워를 하던 도중 Jiten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기관장님의 둘째 아들, Bulbul도 웃음을 터뜨렸다.
오랜만에 웃음을 터트렸던 Jiten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관심을 이끌기 위해, “누구라도 정신질환을 가지게 될 수 있고, 그게 우리 가족 중 한 명일 수도 있다. 지금 저들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같은 하늘아래 사는 우리의 형제이다” 라는 메시지를 가진 연극을 준비했다
우린 SHIS 정중앙에 있는 고목 앞에 무대를 꾸렸다. 미리 홍보까지 해놨던 터라 SHIS스텝 및 환자 등 100여명의 사람들이 찾았다. 연극의 주인공인 6명의 아이들은 정말 말 그대로 온몸을 던져 연기해주었고, 덕분인지 몇몇 사람들은 정말 눈시울을 붉히기까지 했다. 정말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연기 투혼을 펼치는 아이들
정신질환자들은 이곳에 5월 전까지 머무르면서 환자들에게 약물치료와 상담을 제공하면서 직업교육까지 병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실제로 환자들 중 한 명은 내가 오기 전부터 상당히 호전되어서 낙엽을 쓰는 일 등을 하고 있다. 그리곤 최종적으로 그들이 정상으로 돌아와 그들의 집과 가족에 대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게 되면,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 주기로 했다.
나에게도 목표가 하나 생겼다. 내가 돌아가기 전까지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내가 여기까지 온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온 듯하다.
이곳에 오기 전 합숙교육을 받으며 들었던 얘기, “봉사활동을 하면서 제일 어려울 때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다” 100% 공감한다. 아무도 나에게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엔 다소 방황했던 것 같다.
결국 찾아냈다! 이젠 계획한 대로 진행하는 일만 남았다. 부디 내게 주어진 짧은 시간동안,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변화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안주영씨가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기대 많이 해 주세요 :) 인도에서의 생생한 봉사체험 활동은 다음번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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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명이면 거의 다섯배나 늘어났네요!
예전에 경쟁률이 너무 세서 슬펐는데 ㅎㅎ 좋은 소식입니당!
꺄울님 도!전! ㅋㅋㅋㅋ 화이팅 입니다~~~
많은 분들이 당첨되길 빌어요!ㅎㅎㅎ
요시님도 도전해 보세요!
해외 나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의미있는...
아 가고싶다...
신청하셨어요? ㅎㅎ